Admin/News마커_일반 2009. 8. 21. 17:08

다치가와

[단독] DJ 마지막 외신 인터뷰, 다치가와 “납치때 부산사람이 풀어줬다”

[일간스포츠 정병철] 2009년 6월 1일 일본 도쿄. 다치가와 일본 일간현대 외신부장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한국에서 온 전화였다. "내일(2일) 오후 2시 동교동으로 오세요"

다치가와 부장은 2일 오전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살고 있는 동교동으로 향했다. 1층 접견실에서 5분간 기다렸다. 김 전 대통령은 비서관의 부축을 받으며 2층에서 내려왔다.

DJ는"다치가와 기자 오랜만입니다. 당신을 보니 옛일이 생각난다"며 반갑고 손을 잡아 주었다. 다치가와 부장은 말 하면서 숨을 가뻐하는 김 전 대통령에게 "건강이 괜찮으십니까"라고 안부부터 물었다.

김 전 대통령은 "괜찮다. 대통령 재임시절 한 번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70일이 지난 18일 DJ는 이승과 영영 작별했다. 덕분에 그는 이승에서 김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인터뷰한 외신기자로 기록됐다.

"하느님 살고 싶습니다. 살고싶습니다"

다치가와 부장은 DJ는 자신과의 인터뷰에서 1973년 8월 일본 도쿄납치 사건과 한국 정치의 지난 시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줬다.그는 "동경납치 사건에 대해 말하실때는 마치 연단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같았다"고 전했다. 당시 그 사건 현장을 취재했던 그는 "DJ에게 동경납치 사건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말씀하셨다"고 했다.

DJ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눈을 가렸고. 내 발은 큰 돌과 함께 묶여져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바다위로 던지려 했다. 그래서 난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살고싶습니다. 살고싶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다.

그 말이 끝나자 하늘에서 헬기 소리가 들렸다. 살았구나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눈이 가려 진채 배 타고 부산 앞바다까지 와서 기적적으로 살았다. 그 때 나를 풀어준 사람의 말이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부산 사람입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십시요'"

그는 "DJ는 그 말을 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지 눈시울을 붉혔다"고 했다. DJ는 어떤 특별한 인연이 있었길래 그는 이승에서 마지막 인터뷰 한 외신기자가 됐을까.

그가 DJ를 처음 만난 것은 1972년 가을. DJ가 일본 동경(도쿄)에서 유신선포 소식을 접하고 유신 반대 성명을 발표하던 날이다. 그는 당시 DJ를 인터뷰했지만 일본에서 덜 알려진 정치인이어서 지면에 반영되지 못했다.

▲지난 6월 2일 동교동에서 DJ와 기념촬영을 한 다치가와 기자. 마지막 기념촬영이 됐다. 1972년 DJ와의 인연

그런데 1973년 8월 초 일본 도쿄에서 DJ납치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기자들 모두 DJ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 DJ는 8월 13일 서울에 나타났다. 그도 서울로 날아왔다. 동교동 자택에서 피랍 기자회견을 하는 DJ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동교동을 드나들며 DJ와 함께 측근들도 알게됐다"고 했다.

그후부터 그는 동교동계의 한 식구였다. 73년 그해 어느 날. DJ가족과 아침식사를 했다. "막내아들 홍걸이가 아버지에게 뭐 좀 사달라고 했는데 웃으면서 돈 없다고 사주질 않아 DJ는 '돈이 없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또 "장남인 홍일씨도 공군에서 휴가를 나와 함께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82년은 DJ가 80년 신군부 세력에 의해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사형확정을 선고 받은 시기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DJ 구명운동이 일자 82년 12월에 석방됐다. 곧바로 미국 망명길에 오른 DJ를 미국 워싱턴 국제공항에서 다시 만났다. 머리숱이 빠진 DJ는 그를 보자마자 "여기 있었구나"라며 반가움을 표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 DJ와 단독인터뷰를 했다.

그는 미국생활을 하는 동안 DJ와 여행도 많이 다녔다. 보스턴· LA·필리핀 등 DJ가 여행을 좋아해 동행한 날도 많았다.

그는 "DJ는 여행을 할 때도 인권과 한국민주주의, 그리고 일본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했다. DJ는 83년 미국에서 재미 한국 인권문제연구소를 세웠다. 85년 DJ가 한국으로 귀국했을때 그는 "침대도 옮겨주는 등 이사를 도왔다"고 했다.

또 DJ가 가택연금 당했을 때 그의 메모와 육성테이프를 일본과 미국 의회에 전달하는 등 한국 민주화를 위해 헌신적인 역할도 했다. 그는 또 92년 14대 대선에서 낙선한 DJ를 영국에서 만나 단독인터뷰했다. 동교동계에선 DJ가는 길에 다치가와 기자가 있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그는 DJ와 절친했던 기자였다.

"다음에 또 봅시다"DJ 이승 마지막 멘트

그는 DJ가 대통령에 당선 된 이후에는 만나지 못했다. 국정에 바쁜 대통령을 사적으로 만나 인터뷰 하는 건 실례로 생각했다. 대신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언론에서 김 전 대통령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지난 14일 한국에 왔다.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중이었던 DJ 병문안을 갔고, 거기서 이 여사를 만났다.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한국에 남아있고 싶었다. 그는 18일 오후 한국의 뉴스속보를 들어야 했다. '1시43분 DJ 서거'.

그 속보를 접한 후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갔다. 서거 후 두 번의 조문을 갔다는 그는 "남들에게는 대통령이었지만 나에게는 영원한 인생의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그는 "DJ는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하고, 한두 잔의 위스키를 즐겨 마신 달변가이셨지만 한없이 약한 분이셨다"고 회상했다.

그는 "38년을 함께 했는데 한장의 사진만 남았다.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물을 수가 없게 돼 버렸다"며 지난 6월2일 DJ는 다치가와 기자에게 "다음에 또 봅시다"란 말을 남기며 헤어졌다. 그 말이 DJ로부터 이승에서 들었던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선생님 너무 보고싶습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인파 속으로 사라질 때도 양 어깨를 적시는 빗줄기는 끝없이 계속됐다.

정병철 기자 [jbc@joongang.co.kr]
양광삼 기자 [yks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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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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