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막힌 남북관계 풀려는 뜻…나는 변하지 않았다”
“제가 ‘변신’을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제가 변한다면 황석영의 문학 전체가 무너지는 건데 어떻게 제가 변하겠어요? 제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이 와야 하고, 그러자면 정부의 협조를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황석영(66)씨는 자신의 카자흐스탄 발언이 불러일으킨 파장에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내 의도가 잘못 전달됐다”며 “생각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다 접고 조용히 글쓰는 일로 돌아갈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오해도 풀리고 일도 잘 진척될 것으로 낙관한다”고 덧붙였다.
황석영씨를 15일 오후 경기도 일산 자택 부근 찻집에서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귀국한 뒤 발언 파장을 보면서 든 소감은?
“집에 오자마자 새벽 두시까지 인터넷 찾아보고,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먹고 점심에야 깨어났다. 세상이 난리가 났더라. 이번에 따라간 게 가장 큰 실수였다는 심정이 들 정도다. 일하는 과정에서 비난이 있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드셀 줄은 몰랐다. 내 말이 잘못 전달된 점이 많다. 사회적으로 설명이 잘 안 된 채로 대통령 순방에 동행한 게 가장 큰 원인이었던 같다.”
-뭐가 잘못 전달됐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진보정권이었고 많이들 정부와 같이 일을 해서 나는 거리를 뒀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는) 남북관계가 막힌 것처럼 재야와 정부가 완전히 막혔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이 풀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후배들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명박 대통령 쪽에서 연락이 와서 만나기 시작했다. 특히 남북문제에서 양쪽이 모두 시간낭비 하면 안 된다. 또 몽골+투코리아 구상이 있는데, 나는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관계가 풀리면 북한 노동자와 남한 청년 실업자들이 같이 몽골에 가서 개척하고 여러가지 좋은 일을 할 수 있고, 그러면 ‘느슨한 연방제’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이 대통령도 생각이 같다고 했다. 이 대통령에게 ‘대북관계를 풀 생각이냐’고 하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안 하면 어떻게 가겠느냐’고 하더라.
사랑하는 후배인 진중권이 나더러 ‘코미디’라고 했는데, 작가가 이런 꿈을 안 꾸면 누가 하겠나.”
-남북문제를 풀기 위해 현 정부를 도울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어떤 정권이든 현실적 거리를 둬왔는데, 남북관계는 정부의 협조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국가보안법에 걸린다. 내가 옛날처럼 할 수는 없지 않냐. 부분 협조를 해서 성공한다면 현 정부가 성공하는 것 아닌가. 현 정부가 성공하는 게 국가·사회적으로 나쁜 일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 중도실용이라고 보나.
“중도실용을 들고 나와서 당선되지 않았나. 그런데 촛불시위로 정신 없었을테고, 주위를 둘러싼 세력이 지난 10년과 반대방향으로 가니까 자기 생각을 관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편향이 심해졌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부패세력’이라며 비판하지 않았나.
“그 뒤에 선거를 했고 투표했고, 자기들 표현대로 ‘압도적 과반’을 얻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걸 현실적 조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카자흐스탄 간담회에서 광주민중항쟁을 ‘광주사태’라고 했다.
“내가 광주 중심에서 뼈를 깎은, 그걸 다 겪은 사람이다. 광주가 나고, 나의 문학이다. 지금 와서 그 표현을 가지고 ‘가치가 변했냐’는 것은 말꼬리 잡기다.”
-‘유럽도 광주사태 같은 걸 다 겪으면서 가더라’고 한 말은 광주학살을 용인하는 듯 들릴 수도 있는데.
“창피한 일이 서구에서도 있더라고 말한 것이다. 사안마다 (정부와) 싸울 때도 있지만 큰 선에서 변화시키는 길도 있다는 말인데 그게 마치 광주가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비쳤다. 오해가 있다면 나를 믿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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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상반기까지는 이명박 정부 한시적 용인
광주가 바로 ‘나의 문학’…폄훼 의도 전혀없어
-순방 따라간 걸 후회하나.
“후회라기보다는 좀더 신중하게 결정할 걸 그랬나 싶다.”
-이명박 정부와 부분적으로 손을 잡으려다 보니 ‘립서비스’가 지나쳤다는 말인가.
“그런 면이 있다. 같이 일을 하자고 하니까. 경솔함을 사과한다. 그런데 단서가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도 대북문제를 풀려는 아무런 노력이 없을 때는 현 정권에 대한 희망을 접고 포기하겠다고 이 대통령에게 분명히 밝혔다.”
-앞으로 남북문제나 몽골+투코리아 구상은 어떻게 할건가.
“좀 맥이 풀리지만 후배들과 의논하면서 추스려가겠다. 욕은 내가 먹겠다. 나는 두 달 전까지도 남북정책을 바꾸라는 촉구 성명에 참여한 사람이다. 황석영이 변하면 내 문학이 없어지는 건데…. 누구는 ‘저게 정치적으로 야욕이 있어서 그런다’고 한다. 나는 독자들 사랑을 받았고, 지금 죽어도 문학적으로 여한이 없다. 하지만 남북문제를 풀어야하고, 세계에서 자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유라시아 특임대사 내정설이 있다.
“몽골+투코리아 구상 등을 실천하려면 정부 예산이 필요하다. 그걸 하려면 타이틀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다.”
황석영씨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백척간두에 서 있는 피에로의 심정”이라며 “그래도 다 털어놓고 나니 시원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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